[사건을 보다]‘생수병 사건’ 미스터리…흔적 없는 보복?

2021-10-23 81



지난 18일, 서울의 한 회사 직원 2명이 생수를 마신 뒤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물맛이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를 찾은 경찰은 "또다른 직원 한명이 무단결근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경찰이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숨져있었습니다.

그의 집에선 다량의 독성물질이 발견됐습니다.

중태에 빠진 피해자 한명의 혈액에서 검출된 것과 같은 성분이었습니다.

경찰은 숨진 직원을 특수상해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그가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선 의문만 남을 뿐입니다.

Q1. 용의자가 숨지면서 수사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범행동기는 나왔습니까?

경찰이 회사 직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용의자 강모 씨의 범행동기를 추정할 만한 단서를 포착했습니다.

'인사불만'을 갖고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입니다.

문제의 생수를 마신 뒤 의식을 잃은 두명은 모두 강 씨와 같은 부서, 같은 팀에서 근무하던 상사들이었습니다.

특히 중태에 빠진 40대 남성의 경우에 강 씨의 인사권을 가진 간부급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업무능력 부족 등을 이유로 강 씨를 수차례 나무랐고, 최근에는 회사의 일부 직원들에게 "강 씨가 계속 이런 식이면 지방으로 발령을 내겠다"고 말했다는 진술이 나온 겁니다.

경찰은 강 씨가 이 말을 전해듣고 복수심에 범행을 계획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Q2. 계획범죄란 얘기네요. 대낮에, 60명 정도가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어떻게 이런 범행이 가능했을까요?

강 씨는 사건 다음날인 19일 오후, 자신의 집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강 씨의 집에선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다량의 독성물질이 발견됐고, 강 씨의 휴대전화 등에선 농업용 살충제나 제초제의 원료로 쓰이는 무색의 독성물질을 검색한 흔적들도 나왔습니다.

특히나 해당 독성물질과 관련한 논문까지 찾아본 것으로 확인됐는데, 사건 발생 시각은 점심시간 직후인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입니다.

경찰은 강 씨가 직원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피해자들이 마시고 있던 생수병에 독성물질을 넣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Q3. 그런데 정작 피해자들이 마셨다는 생수병에선 독성물질이 안 나왔다면서요?

어제 오전에 나온 국과수의 1차 감식 결과인데, 피해자들이 마셨다는 생수병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경찰은 생수병이 바꿔치기 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데, 저희의 취재 결과 이를 의심할만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피해자들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강 씨가 보인 이상행동들인데, 회사 직원들이 피해자들이 마시던 생수병을 수거하려고 하니까, 강 씨가 갑자기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면서 새 생수병을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는 겁니다.

직원들의 관심을 분산시킨 뒤에 범행에 쓰인 생수병과 바꿔치기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실제 숨진 강 씨의 집에서 발견된 생수병에선 해당 독성물질이 검출됐습니다.

경찰은 강 씨 집에서 발견된 생수병이 피해자들이 마신 것과 같은 것인지 대조작업을 벌이는 동시에, 사건 당일 오후 6시 퇴근을 한 뒤 다음날 새벽 3시 귀가할 때까지,

강 씨의 추가행적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Q4. 그런데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혐의를 밝히는 게 쉽지 않은 것 아닙니까?

중태에 빠진 40대 간부급 남성의 혈액에서 범행에 사용된 독성물질이 발견됐습니다.

특히나 강 씨는 지난 10일에도 한 때 회사 숙소의 룸메이트였던 직원을 상대로 비슷한 범행을 저질렀는데, 당시에도 해당 직원이 마신 탄산음료 병에서 이번 범행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독성물질이 발견됐었습니다.

Q5.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런데 회사는 왜 재빨리 신고를 안 한 거죠?

지난 18일 두명의 직원이 쓰러졌지만, 정작 경찰에 신고를 한 건 회사가 아닌, 피해자들이 실려간 병원이었습니다.

지난 10일 사건의 경우에도 회사는 "문제의 음료에서 독성물질이 발견됐다"는 업체 측의 설명을 들었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회사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서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는데, 그래서 어제 저희가 회사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찾아가 봤습니다.

하지만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 채 문틈으로 A4용지 절반 분량의 입장문만 건넸는데, "직원들도 뉴스를 보고 새로운 내용을 접한다"면서 "코로나19 이후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취재할 대상이나 정보가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3명의 직원이 범죄피해를 당한 회사에서 낸 입장이라곤 믿을 수 없군요.

사건을 보다, 최석호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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